일본 동경 출장을 갈 일이 생길때 가끔 하루정도 시간이 날 일이 있곤 하다..

항상 여러나라를 출장 다닐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대도시란 아무리 관광으로 포장을 해도 그렇고 그런곳 이기 마련인지라...서울보다는 좀 더 깨끗하긴 하지만 언뜻 서울과 별 차이 없는 대도심 도쿄에 질렸다면 도심 근교의 하코네나 후지산 관광을 추천한다.


하코네 관광은 당일 또는 하루 근교의 료칸이나 호텔 같은곳에서 묵으며 보낼 수 있는데.. 

기본적인 일정은 기차 노선인 오다큐선의 "로만스카"를 타고 하코네 프리패스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다.

하코네를 당일 여행하거나 혹은 1박2일 여행을 한다면 화산 꼭대기인 오와쿠타니에 가서 유황냄새도 맡고 검은 달걀을 먹는 것도 좋지만 온천에 잠깐이라도 들러 피로를 푸는 것을 추천한다.

당일 코스로 신주쿠에서 로망스카를 타고 출발한다면 역 근처네 있는 하코네 유료 온천을 가급적 이용하는게 좋겠고... 1박2일을 한다면 오카다 호텔의 유노사토 온천에서 온천을 하고 1박 하는 것도 추천할 만 하다...

오카다 호텔은 하코네 유모토 역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고 온천은 여기서 다시 약 200m정도 떨어져 있다.

하코네까지 이동하는 자세한 방법은 아래의 오다큐선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노선도 및 지도가 제공됨)

일반적인 하코네 여행 코스 : http://www.odakyu.jp/korean/course/hakone/

온천포함 하코네 당일 모델코스 : http://www.odakyu-travel.co.jp/kor/higaeri/higaeri_main.html

하코네유료(Yuryo) 온천 : http://www.hakoneyuryo.jp/english/hotsprings/

오카다 호텔 

     : http://www.hotel-okada.co.jp/korea/

     : https://kr.hotels.com/ho388908/hotel-okada-hakone-ilbon/

   

by 쿠리다쿠리 2017. 10. 17. 20:04
by 쿠리다쿠리 2017. 9. 27. 01:18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by 쿠리다쿠리 2013. 1. 4. 20:57

 

 

로텐부르크에 있는 Käthe Wohlfahrt 크리스마스 백화점 입니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온갖 수제 크리스마스 장식품으로 유명한 곳. 본점은 로텐부르크인 것 같고 독일 유명한 관광지에 몇 개의
지점이 있음

 

 

11월 12월에 열리는 프랑크푸르트의 크리스마스 마켓 사진도 몇장.... 맛있는 글뤼바인 파는 가게와 놀이기구 사진....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유럽에 참 볼만한게 더 많은 것 같다..   

 

by 쿠리다쿠리 2012. 12. 26. 01:52

2012년은 11월 30일 에서 12월 일까지 열렸네요.
by 쿠리다쿠리 2012. 12. 26. 01:30

CES에 출장 가는데 어디서 뭘 먹어야 할 지...
가본지 하도 오래여서 생소하기만 하군.....

라스베가스 호텔, 아울렛 및 관광 등
http://blog.naver.com/PostThumbnailList.nhn?from=postList&blogId=ilovebusybee&parentCategoryNo=14&currentPage=1

뷔페
http://www.mymart.ws/guide/travel/us/nv/las/food.html

http://www.happytour.co.kr/biztrip/info/lasvegas_res.html

http://www.touroad.com/edasom/bbs/board.php?bo_table=e_02&wr_id=12

리오호텔 Sea Food 뷔페(Rio All-Suite Hotel&Casino Village Seafood Buffet)
 : 비싸나 해산물 많다고 함, , $38+Tax
 : 스트립의 Harrah's Hotel에 무료셔틀이 있음
Makino 일식(프리미엄 아울렛)

한인식당
http://www.lasvegaskim.com/Kor_Restaurant.htm
: 대장금, 명동순두부, 김치식당(Wynn 호텔)
: 사하라 호텔 뒤쪽에 Korea Town이 형성되어 있고 스트립에도 많이 있음

아울렛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lovebusybee&logNo=120044473388&viewDate=&currentPage=1&listtype=0&from=postList&userTopListOpen=fals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undefined

http://pustith.tistory.com/791



by 쿠리다쿠리 2012. 1. 9. 19:52
by 초록불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김철 연세대 교수의 한마디로 족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식 파시스트. (김철, 국문학을 넘어서, 국학자료원, 2000)

이준님은 언젠가 안호상이 히틀러의 저작을 국내에 소개했다고도 했는데, 그 점은 잘 모르겠다. 다만 안호상은 독일을 대단히 존경해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독일은 독일의 위대한 철학가 피히테의 정신 밑에 독일의 모든 학생들이 단결하며 움직여서 분열되고 파멸된 독일의 민족정신을 완전히 통일시켰던 것이다. 특히 독일의 대학생의 철저한 민족정신으로 말미암아 죽어가던 독일의 민족과 국가와 문화는 다시 살아나서 찬란한 결과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평화일보 1948년 09월 29일)

그 찬란한 결과라는 것이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것을 머리에 담아두고서 한 말일까?

그는 일민주의一民主義라는 철학체계를 만들어서 이승만 독재에 철학적 기초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주체사상이나 다를 바 없는 일민주의를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해서 이름만 한백성주의라고 고쳐서 써먹었다. 물론 그때는

- 강력한 민족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여야 하며, 아울러 영명하신 이 대통령 각하를 받들어 지대한 민족 과업을 성취하는 대도로 매진할 것
- 우리는 일민주의를 위하여 일하며 싸우며 또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안호상, 일민주의의 본바탕, 1950)

같은 이야기는 다 빼버렸다. 위 책에는 철기 이범석의 서문이 붙어있었는데,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믿기를, 일민주의는 영명하신 우리의 지도자 이승만 박사께서 창조하신 것으로서 일생을 통해 빛나고 지공 지성한 혁명 투쟁과 독립운동의 경험을 집대성하신 것인데, 단군의 홍익인간의 정신과 또 신라 화랑도의 중의 경사重意輕死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신 이상적 보민 구국의 이론 체계인 것이다. 이 이론적 체계를 다시 부연 설명하기 위하여 이번 『일민주의의 본바탕』이 간행된다는 것은 시기에 적합한 일이며 대통령 각하의 사상과 글과 말씀을 듣고 보고 또 생각한 문교부장관, 일민주의 보급회 부회장인 안호상 박사가 그의 철학적 모든 온축蘊蓄을 경주하여 편저한 만큼, 이 책의 내용이야말로 일민주의를 금과옥조로 해설한 귀중한 한 개의 경전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바로 유명한 이승만의 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에서 파생된 철학이 바로 안호상의 일민주의였다.

뭉쳐지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 진리가, 여기서 또 한번 타당하다. 이것은 누구보다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안호상, 김종욱 국민윤리학, 1975)

그는 애초 국대안을 찬성하였고 초대 문교부장관으로 재임하면서 학도호국단을 창설하여 학원을 병영화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학도호국단 이외의 학원단체는 모두 불법으로 만들어 해산케 했으며, 좌익 혐의가 있다 하여 수만 명의 교원을 교직에서 숙청했다. 사감에 의한 무고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할만큼 엉성한 조사였다.

그는 1906년생으로 1920년에는 일본 동경에 유학, 1922년에는 중국 북경과 상해에 유학했으며, 1925년에는 독일 예나 대학 졸업, 1929년에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0년 귀국하였는데, 그때 귀국 소감을 묻자 이런 답변을 남겼다.

"8년만에 대하는 고국은 모든 것이 놀랄만큼 변천되었습니다. 겉으로 대하는 고국산천의 변천은 놀랄만 하지만 안으로 대하는 고국은 그 어디인지 폐허인듯합니다. 앞으로 할 일은 아직 작정을 하지 못하였으며 수일 후에는 고향 의령으로 떠나려 합니다." (중외일보, 1930.8.21)

그는 상해에 있을 때, 이승만과 신채호의 대립을 목격했다 하며 신채호 쪽 입장을 지지했었다고 한다. 그의 귀국 인터뷰에는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가 엿보인다. 그러나 그후 독립운동을 했다든가 하는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친일 행위를 했다는 기록도 없다. 다만 특기할만한 사항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가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독립운동 사건은 아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학자들이 옥고를 겪고 목숨을 잃는 불행한 사태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사건 자체는 일제가 조작했던 것에 불과하다. 아무튼 안호상은 이 사건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하고, 구속을 피해 달아나 금강산에 숨어 있다가 해방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런데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안호상의 부인이 친일파로 이름 드높은 모윤숙이라는 사실이다. 안호상은 1934년 7월 20일 춘원 이광수의 중매로 모윤숙과 두번째 결혼을 했다. 이광수는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변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 무렵에 춘원과 교분이 있었다는 것이 흠은 아니겠다. 하지만 모윤숙과의 관계는 꺼림칙한 것이 사실이다.

안호상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모윤숙이 집안에서 얌전히 있지 않고 나돌아다니는 것을 못마땅하여 곧 별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딸 안경선安炅仙(1936년 출생)이 있으니 상당기간 같이 산 것은 확실치 않은가? 더구나 두 사람의 이혼은 1960년대에 이루어졌다. (송영순, 모윤숙 시 연구, 국학자료원, 1997) 모윤숙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승만 정권 시절 안호상과 마찬가지로 정권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1950년에 안호상은 대한청년단 단장이었고, 모윤숙은 대한여자청년단 단장을 역임했다. 물론 아내가 한 일, 남편이 어쩌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모윤숙은 1941년부터 적극적인 친일에 나선만큼 이 시기에 이미 안호상과는 별거, 실질적인 이혼 상태였다고 하면 빠져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친일파라면 이를 가는 것처럼 보이는 안호상이 사실은 자신의 전처가 친일파인데도,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이승만 정권의 요직에 참여하는 것을 방관한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또한 안호상을 떠받드는 이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해방 정국에서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는 안호상의 책임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바로 일민주의,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 철학에 의해 일민주의의 위대한 영도자 이승만 밑에 뭉치는 사람은 다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일단 그 밑에 선 이상, 그들을 분리, 분열시키려는 자는 일민주의에 위배되는 인간으로 취급받아야 했다. 친일파 청산을 방해한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사람, 그가 바로 안호상이다. (그는 1951년 자유당 창당대회에서 "자유당 만세 삼창"을 선창한 사람이기도 하다.)

(문) 이번 실시된 교육계의 교원숙청 문제는 이것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것인가?
(답) 물론 전국적으로 숙청하는 것이다.
(문) 그 숙청문제의 중점은 어디다 두는가?
(답) 사상에 중점을 둔다. 교원으로서 좌익적 사상을 가진 자는 전면적으로 숙청할 것이다.
(문) 그러면 좌익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밝히게 되는가?
(답) 그것은 교장과 학생 또는 일반의 여론과 경찰의 신원조사로써 밝힌다.
(문) 동료간의 불친목인 자도 숙청 대상이 되는 모양인데 그 한계는?
(답) 역시 동료간의 불친목은 결국 학교 내에서 학교당국에 협의 않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좌익사상은 아니되 학교와 학생간의 중간적 입장으로 학원을 파괴하는 자는 그러한 사람들이다.
(문) 그렇게 되면 혹 교장과 교원간의 사감으로도 숙청대상이 될 수 있지 않는가?
(답) 그런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확실한 내신서에 대해서는 접수는 접수대로 하여 놓고 문교부에서는 문교부대로 사실 여부를 조사한다. 그리고 이번 숙청은 제1차로 보겠으며 앞으로 계속 숙청을 할 것이나 제2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1949년 03월 12일)


위 굵은 글씨에 나오는 것처럼 결국 자기 말 안 따르는 사람은 다 목을 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친일파 교원 숙청 같은 말은 안호상 입에서는 나온 바가 없다. 좌파 척결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나오지만... 안호상은 5만1천명의 교원을 조사한 뒤 5천명을 숙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숙청 수는 확인하지 못했음. 국민학교 교원 중에서만 1,641명이 숙청되었다는 동아일보 1949.3.17일자 보도가 있음)

안호상의 일민주의란 주체사상과 별다를 것이 없다. 국가를 가정으로 생각하고 핏줄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에서도 그렇다.

- 부모 형제가 가족이라면, 한 핏줄의 한백성 동포는 민족이며, 또 가정이 가족의 집이라면, 나라는 민족의 집이다.
-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민족의 여러가지 구성요소들 가운데, 그 핏줄이 그 결정적 요소라는 것이다. 한 민족은 같은 한 조상의 한 핏줄을 받은 사람이라야만 한다. ... 다른 조상의 핏줄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들은 같은 한 민족이 될 수 없다. (안호상, 나라역사 6천년, 한뿌리, 1987)


그는 위의 예로 이스라엘을 들고 있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그 핏줄을 지켰던가? 다른 조상의 피가 그들 속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저렇게 핏줄을 강조한 나라가 하나 있었다. 나찌 독일. 그들은 유태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유태인으로 분류해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그중 상당수가 아우슈비츠 등의 가스실에서 처형당한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핏줄, 핏줄 하면서 나찌즘에서나 할 이야기를 늘어놓는 안호상. 그런 그에게 첫 문교부 장관을 맡긴 이승만. 모두 아찔하기만 하다. (처음에 나왔던 독일 찬양 문구를 다시 떠올려보라.)

1950년 4월 22일 학도호국단 1주년 기념식에서 안호상은 이런 연설을 했다. 학도호국단의 총재는 대통령, 부총재는 국무총리, 중앙학도호국단장은 문교부장관 즉 안호상 자신이 맡도록 되어 있었다. 운영 과정도 군대와 동일했다.

"외적의 압박과 침략에 시달려 병든 이 조국은 제군들을 부른다. 총칼로 육체를 무장하고 민족사상으로 정신무장을 하여 옛 우리 선조가 임전무퇴의 화랑정신으로 삼국통일을 한 것과 같이 일민주의로 失地 회복과 남북통일을 맹세코 이룩하자." (자유신문)

일민주의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학도호국단. 그들의 선서 내용을 보자.

1. 우리 호국학도는 화랑도의 기백과 3·1정신의 계승발휘로 불타는 조국애·민족애로써 공산주의와 이북괴뢰집단을 타도, 조국통일성업에 몸과 마음과 피를 바친다.
1. 우리 호국학도는 일민주의 지도원리 밑에 학원의 자유민족문화의 향상을 위하여 전진한다.
1. 우리 호국학도는 국가의 기반을 좀먹는 일체의 부패분자를 소탕하고 이 민족의 도의와 양심을 바로잡기 위하여 과감한 투쟁을 전개한다.


그런데 학도호국단을 만든 실제 목적은 위의 선언과는 달리 학원내 질서 정착이었다. 말이 좋아 질서정착이고 사실은 좌익 척결 및 이승만의 꼭두각시 양성이 그 목표였다.

(문) 학도호국대 결성으로 학도들의 수업시간이 단축될 염려는 없는가?
(답) 호국대의 훈련은 전쟁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 질서정연한 학도의 조직을 가지려는 것이 제1목표이므로 훈련 때문에 교수시간에까지 영향이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신문 1949년 03월 11일)


안호상은 자기 책 [나라역사 6천년]에서는

"조각조각 갈라졌던 청년단들이 서로 앞장서서 다 해산하고, 4281(1948)년 12월 19일에는 오직 하나의 '대한청년단'으로 뭉쳤다. 그리고 4282년 4월 23일에는 전국 학생 대표 만여명이 서울 운종장에 모여서, 옛날의 화랑단을 본떠 '백만학도호국단'을 만들어 한백성의 학생이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십만팔천리는 떨어져 있으니, 다음 보도를 읽어보자.

安문교부장관은 30일 담화를 발표하여 학도호국단 이외의 일체의 학생단체는 내년 1월 말일 이내에 해체하고 해체보고를 중앙학도호국단 사무국에 제출해야 한다고 미해체 학생단체에 경고를 발했다.
“현하 학도호국단 이외의 여러가지 학생단체가 난립하고 있는 바, 이것은 대통령령 대한민국학도호국단 규정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본 단 운영에 있어서도 지대한 지장이 있는 것이므로 학도호국단 이외의 각 학생단체는 즉시 해체하는 동시에 해체완료보고서를 단기 4283년 1월 말일까지 중앙학도호국단 사무국에 제출하여 주기 바란다.
과거 이러한 학생단체에 관계하던 학도들은 학도호국단에 가일층 협력하는 바이며, 전기 기일 내로 해체하지 않는 단체 혹은 학도에 대해서는 특별한 조치를 취할 것인즉, 이 점에 특히 유의하여 주기 바라는 바이다.” (국도신문 1949년 12월 31일)


자기 이름으로 내놓았던 담화가 머리속에서 깨끗이 증발했던 모양이다. 학도호국단 문제는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그 문제는 아래 기사처럼 심각했다.

(문) 학도들의 군사교련이 너무 심하다고 일반의 비난이 많은데 이를 시정할 의사는 없는가?
(답) 나는 신문을 보고 그러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날의 배속장교는 일제시와 같이 군부 소속이 아니고 문교부 직속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점으로 해서 학도교련에 대하여는 배속장교에 절대권한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남 광주사범에 배속되었던 장교는 좌익학생들에게 살해를 당하였으며 또 한 사람의 배속장교는 눈을 뽑힌 사실이 있음에 비추어 앞으로는 배속장교와 학도간의 구타하는 등의 난폭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배속장교를 모아 놓고 주의를 환기하겠다. (서울신문 1949년 03월 11일)


이런 일 때문에 학원에 경찰이 상주하고 있었고,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은 그것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문) 학원에 대한 경찰의 활동을 어떻게 보는가?
(답) 학원에 대하여 경찰이 간섭하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실은 학원에서 파괴분자를 소탕할 수 있는 자체 방위기관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폐단이 있는 것이다. (서울신문 1949년 03월 11일)


그가 학도호국단에 바라고 있던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이 있다. 다음 기사를 읽어보자.

나는 양심의 소유자인 백만 학도들에 바라는 바는 냉정한 이성과 용감한 기운으로써 우리의 신생정부를 비난하며 방해하는 자를 철저히 방지해서 우리 신생정부가 세계 각국의 승인을 받아 힘찬 발전을 보게 하도록 노력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렇게 하는 데서 대한의 백만 학도들은 조국의 역사에서 더욱 빛날 것이며 세계의 활무대에 자유롭게 진출할 것이다. (평화일보 1948년 09월 29일)

여기에 더해 그는 [족청] 창설에도 관여한다. 이때문에 히틀러 유겐트라는 비난까지 받게 되자 깡패 김두한과도 손을 잡기에 이른다.

그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것도 나를 끌었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그의 주먹이 믿음직했다. 어느 때나 혼란기에는 주먹이 유효한 통치 방법으로 쓰이는 것이다. 나는 좌익, 우익 모두의 공격을 받고 있었던 처지였으므로 나를 보호해 줄 든든한 그 무엇을 바라고 있었으며 김두한은 그런 의미에서 나를 보호해 주었다. (안호상, 김종욱 국민윤리학, 1975)

보호를 원한 것이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 철학자의 입에서 나온 저 한마디를 보면 아찔해지지 않을 수 없다. 혼란기에는 주먹이 유효한 통치 방법이라니!

이미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일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도 거부하고 있었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구미 사상은 파멸의 사상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며, 안호상은

해방 후 비판없이 요란히 떠드는 민주주의 바람에, 우리 민족은 오늘날 이와 같이 불행하고, 우리 조국은 이와 같이 파괴되었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종류, 일민주의출판사, 1953)

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미군정에서 문교부장을 지낸 오천석은 이런 안호상의 교육방침에 대해 "일본식 교육에 대한 열정과 타성이 있을 뿐"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안호상은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할 때도 참여했었다. 그는 국민교육헌장 안에 [홍익인간]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결국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라는 구절로 만족하기로 타협했다고 한다. 홍익인간이라는 문구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것을 대체할만한 교육이념을 제시해야 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국민교육헌장이었다. 안호상은 자신의 책에 국민교육헌장을 앞머리에 싣는 등 바로 이 이념의 전파자로 나서기도 했다. 사실 그가 일민주의에서 주장한 것이 바로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의 기초였으니 이들 세력 간의 궁합이야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환단고기]를 지은 이유립 - 친일단체 가입자에 독립운동과는 십만팔천리는 떨어져 있던 주제에 자신의 과거를 모두 윤색한 성형사가.
[한단고기]를 내놓은 임승국 - 군부독재정권에 아부를 떨고, 기껏 일본책을 중역해서 내놓고는 직역인 것처럼 위선을 떤 인간. [환단고기]를 이미 보았던 전력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함구했다는 것도 웃기기 짝이 없다.
위의 인간들에게 이론을 제공한 문정창 - 일제강점기에 군수에 사회과장까지 지낸 고등문관 출신의 친일부역배.
문정창에게 영감을 준 최동 - 일제강점기에 친일기독교단체를 이끌고 조선침략에 앞장 선 흑룡회와도 붙어먹은 인간.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안호상 - 이승만 독재 정권에게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고, 한국 교육의 파시즘적 형태를 갖춰놓았던 인간. (아참, 일제잔재라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확정한 사람도 안호상이다. 그는 친일파 집결지라고 알려진 한민당 발기인이기도 했다.)

뿌리를 캐면 캘수록 암담해진다. 이런 인간들이 만든 사상누각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민족정기 운운하는 정신줄 놓은 사람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by 쿠리다쿠리 2011. 6. 13. 19:25
출처 YES24 채널예스 |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1013&cont=6092
[희망의 인문학]정재승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인문학자 -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 편 ① “대한민국은 과연 바람직한 국가형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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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 『대중독재』로 알려진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 그에겐 ‘반민족주의 논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새로운 아젠다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그의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요즘 그는 트랜스 내셔널 인문학에 미쳐있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시작하는 ‘트랜스 내셔널 인문학 과정’은 기존의 인문학과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국가를 단위로 구획하는 기존의 인문학 커리큘럼을 대신하고, 인문학의 모든 영역을 소통하고 융합하는 탈학제적 시각을 보여주겠다는 기치(旗幟)다. 새로운 학문을 시작하는 임 교수의 말은 길었다. 과학자의 다양한 질문에 그는 열정적으로 답했다.


정: 선생님의 책은 제 역사관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꼭 여쭤보고 싶었는데요.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를 볼 때, 어느 쪽을 응원하십니까?

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2002년 한국이 폴란드하고 개막전을 했잖아요. 그때 성균관 대학의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이 물어보시더라고요. “임 선생님은 어느 팀을 응원하셨습니까?”라고요. 제가 답했죠. “당연히 한국이죠!” 폴란드사를 전공하긴 했지만, 국가대표 경기에서 다른 팀을 응원하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사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이라는 상황은 그 경기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스포츠를 통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강화하는 면이 있잖아요. 그러니, 한국을 응원하게 되죠.”

정: 저는 고민에 빠트리시고, 선생님은 즐기고 계셨군요!

임: “하하. 내셔널리즘은 교과서 또는 정치 커뮤니티만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를 통해서도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보다도 내셔널리즘의 경계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비판적이지만 어느 팀을 응원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선뜻 “나는 폴란드사를 전공했고, 트랜스 내셔널리즘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폴란드 팀을 응원 합니다”라는 말이 안 나와요.”

정: 그렇군요. 비교역사문화 연구소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임: “2004년 대중독재(Mass Dictatorship)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였죠. 국제학술대회를 하다 보니, 비교사적으로 접근하면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독일사를 독일친구보다 더 잘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더 새롭게 볼 수는 있잖아요? “새롭게 보는 능력은 우리가 더 크다”라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했죠. ‘대중독재’라는 주제로 출발한 연구소라 할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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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리다쿠리 2011. 6. 13. 19:17
출처 YES24 채널예스 |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1013&cont=6093
[희망의 인문학]정재승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인문학자 -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 편② “이명박이 독재라고? 민주주의죠!”
본 인터뷰는 정재승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인문학자 -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 편 ①와 이어집니다.



정: 이제 대중독재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우리 사회와 뗄 수 없는 키워드인데요. 오히려 대중이 독재자를 원한다, 어떤 의미입니까?

임: “대중이 독재자를 원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합니다. ‘대중독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중의 자발적 참여입니다. 나치가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죠.

저도 박정희 시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기에, 억압을 경험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비판적 소수집단의 경험이지, 전체의 경험은 아닌 거예요.

어떻게 해야 과거를 청산할 수 있을까요? 예컨대 “박정희 나쁜 놈!” “유신잔당 처단해라!” “노태우 전두환 없애라!”고 외치면 독재라는 과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에요. 사실, 독재는 선거에서 나옵니다. 이명박 대통령 보고 왜 독재라고 해요? 민주주의죠. 정식 선거를 거쳐서 된 사람인데! 연구자에겐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바로 우리는 누구였고, 왜 이런 대통령에게, 왜 그처럼 나쁜 체제에 표를 던졌는가를 물어야 하는 거죠.”



정: 독재자를 향한 대중의 심리는 무엇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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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리다쿠리 2011. 6. 13. 19:04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http://hook.hani.co.kr/blog/archives/8889

몇년 전에 한 국내 진보 정치인이 오슬로를 방문했을 때 그를 동행한 일이 있다. 노르웨이 정치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가 받은 첫 질문은 “한국이 민주국가냐”였다. 국내 노조 탄압 소식이 노르웨이 좌파 정계에 잘 알려지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되는 질문이었다.이 질문에 대한 국내 정치인의 답은 대단히 현명했다: “한국은, 보다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 발전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왜 현명한 답이었는가? 진보 정치인이 국내외에서 합법적 활동을 한다는 것은 제도적 민주주의의 존재를 의미한다. 진보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긴 싸움을 한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지속적 “발전”을 뜻한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오늘날 한국을 명실상부한 “민주국가”라고 부르기에는, 민(民)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뚫어야 할 벽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민주의 기반은 정치참여다. 정치참여의 가장 기본적 방법은 투표인데, 국내 투표연령은 세계 평균인 18세에 비해 한 살 높은 19세다. 오스트리아 같은 일부 선구적인 국가들은 투표연령을 아예 16세로 낮추어버렸지만, 국내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국내의 보수적 “주류”에게 10대 후반의 시민들은 아직도 훈육 대상인 “아이”지 정치의 주체는 아니다.

투표는 정치참여의 시작이지만, 본격적 정치참여는 대개 정당활동을 의미한다. 정당활동은 모든 시민들의 고유 권리이지만, 국내에서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은 이 권리를 박탈당했다.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는 변명일 뿐이다. 프랑스나 캐나다 등 정통 민주국가들도 공무원의 정치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업무수행에서는 공무원 개인의 정치적 의견 반영을 금지하지만, 공무원의 정당활동을 금지한 적은 없다. 공무원은 “공무원”이기 전에 남들과 똑같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이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등 “민주국가”라고 부르기 어려운 일부 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공무원 정치활동 금지”를 시행하는 한국은, 공무원을 무력화시켜 기득권층의 수족으로 만들려 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면 공무원들이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이 불허되는 진보정당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시행된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치판도 하나의 “시장”인데, 경제가 몇 개 안 되는 거대 재벌에 독점돼 있는 한국에서는 정계도 “재벌”급 강력한 극우, 온건보수 정당에 사실상 거의 독점돼 있는 상태다. 중소기업이 늘 재벌의 횡포에 노출돼 있듯이, 비정규직, 청년,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들의 이해를 표방하는 진보정당은 언론으로부터 외면만 받고 온건 보수 정당으로부터 공직 선거의 결정적 순간에 “우리를 위해 후보사퇴 해달라”는 압력을 받곤 한다.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약자들을 위한 정당이 늘 스스로 약자로 전락하게 돼 있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과거의 망령이 산 자를 괴롭힌다고나 할까? 30년 전에 신군부가 제정하고 그동안 역대 온건 보수 정권들이 뜯어고치지 못한 공무원 정당 가입 금지 사항을, 지금 극우정권이 이용해 자신의 시민권을 살리겠다는 “죄”밖에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교사·공무원들을 무더기로 파면시키는 곳은 “민주국가” 대한민국이다.

1990년대 초반 학계에서 유행했던 말대로 이 “민주주의”는 일종의 “저(低)강도 민주주의”, 즉 실질적으로 기득권층을 위해 다수의 피지배자들을 포섭·동원시키는 외형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저강도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로 거듭나려면, 우선 장시간·고강도의 살인적 노동에 건강을 잃어가면서 살만한 집 한 채 얻지 못하는 소외대중의 목소리는 정계를 제대로 강타해야 할 것이다.

by 쿠리다쿠리 2010. 8. 1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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